그것은 바로 '충혜왕'...
이 왕의 설명은 이 이미지 하나로 끝납니다.

























새엄마‧장모까지 성폭행했던 한반도 최악의 '강간마' 고려왕 - 인사이트
'이히 이히히히히히히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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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은 말 그대로 [여자에 미친 군주]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색마 군주의 골때리는 기록들을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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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병인일, 왕이 그 장인인 삼사좌사 홍융의 계실 황씨(黃氏)를 간음했다.
= 계실 황씨는 장인의 후처(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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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경오일, 왕이 서모인 수비 권씨(權氏)와 정을 통했다.
아버지의 계모를 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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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환관 유성의 처 인씨가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왕이 구천우, 강윤충을 거느리고 그 집에 가서 유성더러 술을 올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유성이 왕에게 "전하께오서는 곧 복위하실 것이니 백성들을 잘 다독거리고 아낌없이 상을 내리소서."라고 진언했다. 
왕의 속내가 그 처를 꾀어내는데 있는 것도 모르고, 유성은 왕이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준다고 착각하여 행동거지를 매우 조심스럽게 하니 주위 사람들이 몰래 비웃었다. 

=신하의 아내는 곧 과인의 아내니라! (어떤 승상이 떠오르는...? NTR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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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갑오일, 경화공주(慶華公主)가 왕을 초대해 잔치를 열었는데 술자리가 파했으나 왕이 취한 체하며 궁궐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가 날이 저물자 공주의 침실에 들어가 정을 통했다. 
=고려 시대에는 왕의 후궁, 왕비도 '공주'라고 칭했습니다. 경화공주도 아버지 충숙왕의 부인! 그것도 후궁이 아닌 정비正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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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위 2년 3월 초하루, 예천군 권한공의 둘째 처 강씨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호군 박이라적을 보내 궁중으로 데려오게 하였는데 이라적이 먼저 간통한 사실을 알고 노하여 [두 사람을 모두 때려 죽였다.]
=과인이 하면 로맨스고 네놈들이하면 불륜이다! [내로남불은 못참느니라!] 다 때려죽여라! (감히 나보다 먼저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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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8월에는 날마다 사냥을 다니다 겨울이 되어 여의치 않자 내시 전자유의 집에 가서 그의 처 이씨를 강간하였고
전에 때려죽인 바 있는 박이라적의 첩과 상관하였으며, 재상 배전의 집에서 그의 처와 그의 아우 금오의 처를 번갈아 간음하기도 하였다.
=어.......음..........

..이것들은 모두 [고려사]에 기록되어있는 내용들입니다. 충혜왕의 엽기행각은 비단 [색탐]에만 그치지 않고 당연히 백성들을 파탄으로
몰고 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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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유부녀를 좋아했다고? 피식. 우리에겐 충혜왕이 있다!!!]

王性游俠 好酒色 耽于遊畋 荒淫無度 聞人妻妾之美 無親貴賤 皆納之後宮 幾百餘。於財利 分析絲毫 常事經營 群小爭進計畫 奪人土田奴婢 盡屬寶興庫 良馬以充內廐。給布回回家 取其利 令椎牛進肉 日十五斤。新宮之役 張旗設鼓 親登墻督之。宮成 徵漆諸道 丹雘之輸 後期者 徵布倍蓰。吏緣爲姦 百姓愁怨。群小得志 忠直見斥 一有直言者 必加誅戮 人人畏罪 莫敢言者。 
왕은 성품이 호협하고 주색을 좋아했으며, 놀이와 사냥에 탐닉해 황음무도하게 행동했다. 
[남의 처나 첩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으면 친소와 귀천에 관계없이 모조리 후궁으로 들이는 바람에 그 수가 100명이 넘었다. ]
또한 재물에 관계되는 것이면 아무리 자잘한 것이라도 따져 항상 이익을 올리려 하니, 군소배들이 다투어 계략을 올려 남의 토지와 노비를 빼앗아 모두 보흥고(寶興庫)에 소속시켰으며 궁중의 마굿간을 준마로 채웠다. 또 회회(回回) 사람들에게 베를 주고 그에 대한 이자를 챙겼으며 소를 도축해 그 고기를 날마다 15근씩 바치게 했다. 새 궁궐을 지을 때에는 깃발을 벌여 놓고 북을 설치한 다음 친히 담에 올라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며 독려했다. 궁궐이 완성되자 각 도에서 옻칠을 거두어 들였으며, 단청을 올릴 물감을 기한보다 늦게 가져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보다 몇 배에 해당하는 베를 징수했다. 관리들은 이를 기회로 백성들을 가렴주구했으며 백성들은 근심과 원한에 싸였다. 군소배들은 출세하고 충직한 사람들은 쫓겨났으며 한 사람이라도 직언하면 반드시 사형해버리니, 사람들이 처형당할까 두려워 감히 말을 꺼내는 자가 없었다. 
-《고려사》 충혜왕 세가 총서-
namu.wiki/w/%EC%B6%A9%ED%98%9C%EC%99%95

우리 pgr에서는 신불해님께서 자게에 이 골때리는 충혜왕의 종합적인 행실에 대해 정리해주신 글이 있지요.
pgr21.com/freedom/74130?category=1&divpage=18&sn=on&ss=on&sc=on&keyword=%EC%B6%A9%ED%98%9C%EC%99%95

충혜왕이 재위 동안 일군 '업적?'들
www.chuing.net/zboard/zboard.php?id=humorb&page=1&m_id=&divpage=1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8520

─ 내시들과 씨름 
─ 내전에서 후궁들(100명이 넘는다고 한다)과 난교 파티 
─ 선왕의 후비(그러니까 새엄마)인 수비 권씨, 숙공휘녕공주 강간 
─ 원나라 공주 강간 (간덩이 어디?) 
─ 장모 강간 
─ 내시들 부인 강간 
─ 대신들의 부인들도 납치해와서 강간. 
─ 재상들의 부인들도 강간 (이 과정에서 일단 부인을 강간하기 위해 재상을 해외로 파견보낸 다음에 야밤에 재상의 집에 침투해서 그 부인을 강간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이기도 함) 
─ 여염집을 뒤지고 다니다가 예쁜 여자 있으면 병사들 시켜서 포박한 뒤에 포박 수치 플레이로 강간. 
─ 자신이 놀 연회장을 만들기 위해 예고없이 민가 100개 철거. 그 노역은 그 집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시킴 
─ 절에 놀러갔다가 비둘기를 잡으려다 비둘기가 절간 위로 올라가 잡을 수 없자, 화가 나 절을 불태움 

─ 상습적으로 열약이라 불리는 정력제를 복용해서, 충혜왕이 강간한 여자들은 모두 임질에 걸렸다고 한다.
충혜왕은 어느 대신의 부인이 아름답다는 말을 듣자 비장을 시켜 잡아오라 명한다. 허나 비장이 납치하기전에 선빵으로 미리 강간을 놓은걸 알게되자 

"내가 먼저 하지 못했거늘 어찌 네놈이 먼저 한단 말이냐!" 하고 몽둥이로 때려죽인뒤 납치해온 여자를 강간한 다음에 죽인 비장의 집으로 가 비장의 부인을 강간했다고 한다. 

강간당한 원나라 공주 숙공휘녕공주는 계속 몸을 요구받자 결국 참지 못하고 원나라에 고발하여 원나라로 충혜왕은 잡혀간다. 
그리고 한번만 봐준다 하고 돌려보내지만 고려로 돌아온 충혜왕은 돌아오기가 무섭게 공주들을 강간하고 놀이터를 만든다. 
결국 다시 원나라로 끌려들어가 원나라 황제 앞에 끌려와서 "네놈이 저지른 죄는 쳐죽일 일이나 나는 피를 보는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여
유배지로 떠나다가 죽게된다. 백성들 중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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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ww.dispatch.co.kr/761485
결국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자 색마왕이었던 충혜왕은 보다 못한 [원나라 황실][원에 뒷배가 있던 기씨 등 권문세족]에 의해
쫒겨나게 됩니다. (기씨 집안도 한 횡포했는데 그런 부원배들까지 왕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은........나라꼴이 어느 정도였는지........)
쫒겨난 충혜왕은 중국 악양(현 후난성 웨양시)에서 귀양을 가던 도중 비참하게 객사하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이 소식을 들은 고려백성들은 만세~

근데 위의 기록들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고 그가 범했던 여인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나라를 자신의 룸싸롱, 하렘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룸싸롱은 제발...ㅠㅠ 여성분들께 저는...
충혜왕 이후 6명의 군주가 더 있었는데 사실상 고려는 이 원 간섭기 이후 망국의 테크를 착실히 밟고 있던 터라
고려의 마지막 희망이자 개혁군주였던 '공민왕'이 무참하게 시해당하면서 나라를 고쳐써보려던 고려의 엘리트들은 등을 돌리게 되지요..
그리하여 [이씨 성을 가진 군벌][정씨 성을 가진 사대부] 등 고려의 엘리트들은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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